3월 12일, '바푸' 간디의 소금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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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 흔히 '마하트마' 간디로 알려져 있다.

 마하트마는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인데, 간디 본인은 이 별명을 부담스러워하며 양아버지라는 뜻의 '바푸'라고 불리는 것을 선호했다고 한다. 영적 지도자다운 겸손이다.


 요즘은 간디에 대한 (부정적) 재평가가 많은 것 같다. 어찌 사람이 완벽할 수 있으랴. 카스트제와 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을 옹호했다는 것에 이어,[각주:1] 사실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뜨억할 소리도 보인다.[각주:2] 그런 부정적 모습과 과오도 알고 기억하되, 긍정적인 모습과 업적도 기억해야 한다는 취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간디와 비슷한 류인 마틴 루터 킹도 비슷하게 부정적 모습이 은근 조명되던데, 나는 나쁜 면이 있다고 완전히 공을 깔아뭉개고 악인이나 위선자로 취급하는 것은 지양하고 싶다. 그렇다고 안희정을 옹호하는 것은 아님.


 간디에 대한 비판-또는 비아냥 중 하나는 그 비폭력-불복종 운동이 '신사적인' 영국에서나 통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소비에트 연방에서 비폭력-불복종 저항을 했다면 굴라그로 끌려가거나, 서로끼리도 죽고 죽이던 볼셰비키에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나치보다 소련이 먼저 나오는 것은 반공주의의 장기적 영향

 하지만 간디가 살던 곳은 소련이나 나치독일이 아니라 영국이었고, 그래서 간디의 비폭력-불복종 운동은 효과를 거두었다. 적합한 곳에서 적합한 방식을 사용해 '평화적으로' 독립이란 성과를 거두었다면,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요소가 아닐까?[각주:3]


 여튼 3월 12일은 간디가 소금행진을 시작한 날이다. '단디 행진(Dandi Salt March)', '소금 사티아그라하'라고도 한다. 사티아그라함에서 사티아(Satya)는 진실(진리)이고, 아그라하(Agraha)는 확고함이다. 그래서 네이버캐스트에서는 '진실관철운동'이라고 멋지게 번역해놨다.[각주:4]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특이점이나 생물(공학)학적 변화가 오기 전까지 소금은 인간에게 필수품이다. 소금 없이 살 수 없고, 소금은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는 중요한 자원이다.

 따라서 예로부터 국가들은 소금을 통제하고 세금을 먹이길 좋아했다. 중국 역사는 세금을 독점하여 막대한 수입을 얻는 왕조들, 그리고 그에 저항하는 소금밀매상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각주:5] 프랑스 혁명의 원인으로 '염세', 소금에 붙여진 과도한 세금제도가 지적되기도 한다.[각주:6] 이렇게 소금에 대한 통제로 부당이득을 수취하는 건 영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1882년 소금법의 통과로 영국이 인도의 소금을 독점하게 되었다. 인도인들은 바다가 마르면 소금이 생겨남을 뻔히 알고도, 영국에 비싼 돈을 주고 소금을 사먹어야 했다. 그러던 중 1929년, 인도 국민 회의(과거의 만년 여당이자, 현 인도의 제1야당인 그 정당 맞다. INC.)는 투표를 통해 1년 내 독립하겠다고 선언했다. 간디는 영국에 대한 불복종 운동으로 소금 통제에 대한 항쟁을 택했다. 더운 기후로 땀이 많은 인도인들에게 소금은 '공기와 물 다음으로 중요하'며, 따라서 모든 인도인의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사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방식은 평화적이나 영국에 복종하지 않는-비폭력 불복종 운동의 이데아와 같았다. 간디는 사바르마티 아쉬람에서 출발해, 단디까지 24일을 걸어 행진했다.[각주:7] 그 거리는 390km. 서울-부산 거리가 325km라니, 그 이상의 거리를 행진한 셈이다,

 단순히 행진만 했던 것이 아니다. 가는 곳마다, 들리는 곳마다 그는 영국 통치의 부당함을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그를 따랐다. 그리하여 사바르마티 아쉬람에서 출발할 때에는 79명이었지만, 댄디에 도착할 즈음에는 6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를 따르고 있었다. 댄디에 도착한 그는 바다에서 소금 한 줌을 건져올리며 족쇄로부터의 해방을 온몸으로 선언했다.

 오랜 세월, 영국이 무서워 눈앞의 소금을 비싼 돈 주고 사와야했던 이들. 그들이 까마득한 여정으로 모이고 모여, 마침내 도착한 해안의 소금을 들어올리는 그 순간의 감각과 감격이 어떠할지. 머리속으로는 그 순간이 어렴풋이 그려지는데, 글솜씨도 말솜씨도 없어서 표현하지 못하는게 원망스럽다.



 내가 생각하는 간디의 소금 행진의 의의는 시민참여다. 시민이라는 용어가 적합하지 않다면 인도 인민의 참여라고 해도 좋다.

 6만명이 댄디 해안에서 소금을 들어올리는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이제 인도 전역에서 사람들이 영국을 무시하고 소금을 만들기 시작했다. 영국은 몇달만에 6만명을 잡아가뒀지만, 한번 무너진 '공포'-영국의 권위는 쉽사리 세워지지 않았다. 영국에 대한 항거는 곧 소금에서 옷감과 물건으로 퍼져나갔다. 영국의 법이 무시되었고, 농민들은 세금을 내는 것을 거부했다. 여성들도 저항 운동에 처음으로 대중적으로 참여했다.[각주:8]

 영국이라는 거대하고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이에 참여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주인의식을 얻었다고 한다면 이는 지나친 해석일까. 민족주의 관점에서는 한국의 3.1 운동이 계급을 뛰어넘은 민족 정체성의 형성에 기여한 것처럼, '인도인'이라는 정체성의 형성에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겠다. 거창하게 말하면 '민족의식의 각성'이리라. 이 부분은 간디의 철학인 '자치'와도 직결되지 않을까 싶다. 

 간디 개인의 사상연관해서 더욱 자세히 이야기해야 하겠지만, 이건 내가 그의 사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새벽에 쓰기에는 무리가 있다.. 쿨럭. 따라서 소금행진의 의의를 시민참여에 두는 것으로 마무리해야겠다.


절망에 빠졌을 때, 나는 기억한다. 모든 역사를 통틀어, 언제나 진리와 사랑이 승리했다는 것을. 독재자도 살인자도 있었고, 그들에게 당장 대항할 수 없어 보여도 결국엔 무너진다는 것을. 이것을 생각하라. 언제나. -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



ps.간디에 대한 책을 마지막으로 읽은건 중학교때 간디 평전을 조금 읽다 만것이 고작이라, 이번에 간디에 대해 이것저것 보다가 그가 '군인', 그것도 전쟁에 참전한 군인이었다는 걸 알고 놀랐다. 젊은 시절의 그가 영국군에 협조하고 인도인 자원입대를 격려했다는 건 알았지만, 설마 훈장을 3개나 받은 영국군이었을 줄이야. 비폭력 운동의 거두인 그가 한때 군인이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그래서인지 많은 한국어 참고자료에는 군인이었다는 말이 전혀 없었다. 오직 지식의 보고, 나무위키 외에는. (영문 위키백과에 들어가 사실임을 확인했다.) 사실 나무위키보다 알파위키를 애용해야 하는데, 역시 정보차이가 심해서...




참고문헌.


나무위키, '모한다스 마하트마 간디' [링크]

영문 위키백과, 'Mahatma Gandhi' [링크]

영문 위키백과, 'Salt March' [링크]

한국어 위키백과, '마하트마 간디' [링크]

한국어 위키백과, '소금 사티아그라하' [링크]

최성일외 20인, 인물세계사, '마하트마 간디', 네이버캐스트(네이버 지식백과) [링크]

두산백과, '마하트마 간디' [링크]

두산백과, '단디 행진' [링크]

로버트 피어스,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계 역사 1001 Days, '소금의 행진', 2009년 8월 20일 [링크]

정병조외 1인, 인도사, '간디의 생애와 사상', 2005년 2월 25일 [링크]

Jason Burke in Delhi, 'Arundhati Roy accuses Mahatma Gandhi of discrimination', The Guardian, 2014년 7월 7일. [번역: '신호철, 마하트마 간디의 허상을 고발하다, newspeppermint, 2014년 7월 24일']

김수진, "간디는 인종차별주의자" 가나 대학 동상 철거키로, 연합뉴스, 2016년 10월 7일

김외현, 중국, 2천년 이상 유지한 ‘소금 전매제’ 올해부터 폐지, 한겨레, 2017년 1월 3일

신유리, <프랑스 혁명이 소금 때문이라고?>, 연합뉴스, 2013년 3월 11일


명언 : https://www.goodreads.com/quotes/739-when-i-despair-i-remember-that-all-through-history-the (번역 나무위키)

  1. Jason Burke in Delhi, 'Arundhati Roy accuses Mahatma Gandhi of discrimination, The Guardian, 2014년 7월 7일. 번역은 '신호철, 마하트마 간디의 허상을 고발하다, newspeppermint, 2014년 7월 24일' [본문으로]
  2. 김수진, "간디는 인종차별주의자" 가나 대학 동상 철거키로, 연합뉴스, 2016년 10월 7일 [본문으로]
  3. 인도의 독립에 간디의 독립운동은 거의 기여하지 못했고, 독립운동의 영향이 과장됬다는 의견을 프레시안에서 본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찾아보니 안나와서 그 내용은 적지 않는다. [본문으로]
  4. 최성일외 20인, 인물세계사, '마하트마 간디', 네이버캐스트(네이버 지식백과) [본문으로]
  5. 중국의 소금 전매제도는 2017년에야 폐지됬다. 김외현, 중국, 2천년 이상 유지한 ‘소금 전매제’ 올해부터 폐지, 한겨레, 2017년 1월 3일 [본문으로]
  6. 신유리, <프랑스 혁명이 소금 때문이라고?>, 연합뉴스, 2013년 3월 11일 [본문으로]
  7. 사바르마티 아쉬람은 구자라트주 아마다바드시의 건물이고, 단디는 구자라트주 나브사리시의 어촌이다. [본문으로]
  8. 간디는 여성에 대해서는 행진 참여를 촉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민족대표와 민중 참여자 모두에게서 3.1 운동의 의의를 읽어내는 것처럼, 간디와 여성 참여자 모두에게서 소금 행진의 의의를 찾는 것은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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